교수님의 서글서글한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직접 뵌 적은 없지만 매체를 통해 접한 당신의 인상은 소박하고 친근하며 스스럼없이 푸근해 보였습니다. 젠체하지 않는 당신에게서 먹물과 은수저를 떠올릴 순 없었지요. 글도 씩씩하고 진솔하게 쓰는 통에 재수 없단 생각은 한 번도 들지 않았답니다. 구름 위의 스승이 아랫것들을 굽어보며 한 수 가르쳐주는 훈계조의 글은 보기만 해도 질색입니다, 왠 유체이탈 화법이냐며 비아냥거리기 십상인데 맑은 내면이 고스란히 투영돼 있는 당신의 글은 바짝 경계하고 있던 마음을 그만 무장해제 시켜버리더라고요. 그런데 당신은 위로하고 달래주며 고무하려고 안달하지는 않으셨어요. 이렇게 솔직담백한 대도 글이 너무 신파조가 아닐까, 지나치게 악착같고 필사적으로 들리지는 않을까 늘 저어하곤 했죠. 또 당신은 신비니, 기적이니 하는 것을 생래적으로 싫어하는 분이셨습니다. 그런 기적 같은 삶을 살기가 싫다. 기적이 아닌, 정말 눈곱만큼도 기적의 기미가 없는, 절대 기적일 수 없는 완벽하게 예측 가능하고 평범한 삶을 살고 싶다. (9쪽) 그러니 당신의 말은 뭐든 곧이들리더라고요. 그런 당신이 제게 괜찮다, 다 괜찮다며 다독거렸으니. 속삭임의 다정한 온기와 측은히 여기는 습윤한 기운에 스르르 풀려버렸던 것이겠지요. 교수님도 괜찮다는 말을 듣고 아연했던 적이 있었죠. 소아마비 외톨이 어린애에게 깨엿 장수가 들려준 그 말, 이제 그걸 저같이 상심한 이들에게 되갚고 있는 셈이네요.교수님! 희망은 운명도 바꿀 수 있는 힘이 있다고 하셨죠. 그 말 늘 곱씹을게요. ‘괜찮아. 다시 시작하면 되잖아. 다시 시작할 수 있어. 기껏해야 논문인데 뭐. 그래, 살아 있잖아……논문 따위쯤이야.’선택의 여지가 없어져 본능적으로 자기방어를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 절체절명의 막다른 골목에 선 필사적 몸부림이 아니었다. 조용하고 평화롭게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일어서는 순명의 느낌, 아니, 예고 없는 순간에 절망이 왔듯이 예고 없이 찾아와서 다시 속삭여 주는 희망의 목소리였다. (18~19쪽) 절망적인 상황임에도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운명에 순응하는 당신의 모습이 보입니다. 자신에게 속삭이는 온화한 목소리도 들립니다. 그걸 느끼는 순간 악연이 선한 인연으로 화하고 절망은 희망으로 바뀔 수도 있다는 생각에 뜨거워졌답니다. 이제 제가 그 주문을 사용해볼게요. 효과를 장담할 수 있는 비법이라고 믿어도 되겠죠. 마법이 꼭 일어나야 할 텐데. 한 치 어긋남도 없는 당신의 체험이니 그 말에 의지하여 다시 추슬러 보렵니다.
당신이 지금 힘겹게 살고 있는 하루하루가
바로 내일을 살아갈 기적이 된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장영희 교수의 유고 산문집. 암투병 중에 완성한 원고이지만, 밝고 따뜻하고 활기에 넘치는 그녀의 평소 모습이 그대로 녹아 있다. 당신이 지금 힘겹게 살고 있는 하루하루가 바로 내일을 살아갈 기적이 된다는 희망. 그녀가 생의 마지막까지 말하려 한 것은, 바로 희망의 힘이다.
내 생애 단 한번 출간 이후, 지난 9년 동안 장영희 교수에게는 많은 일들이 있었다. 2001년 처음 암에 걸렸고, 방사선 치료로 완치 판정을 받았으나 2004년 척추로 전이, 2년간 어렵사리 항암치료를 받았다. 치료가 끝난 후 다시 1년 만에 간으로 암이 전이되었고 입퇴원을 반복하면서도 손에서 놓지 않았던 원고는 이제 그녀의 마지막 글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저자는 ‘암 환자 장영희’로 자신이 비춰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천형天刑 같은 삶’이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그녀는 도리어 누가 뭐래도 자신의 삶은 ‘천혜天惠의 삶’이라고 말한다. 또 기적은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아프고 힘들어서 하루하루 어떻게 살까 노심초사하면서 버텨낸 나날들이 바로 기적이며, 그런 내공의 힘으로 더욱 아름다운 기적을 만들어갈 것이라고 말한다. 그녀가 이 책의 제목을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으로 정한 것은 이 책이 ‘기적의 책’이 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기적이고, 나는 지금 내 생활에서 그것이 진정 기적이라는 것을 잘 안다.
그의 글들은 결코 무겁거나 우울하지 않다. 암 투병, 장애… 자칫 암울해지기 쉬운 소재들을 적절한 유머와 위트, 긍정의 힘으로 승화시키는 문학적 재능과 여유는 장영희만이 갖는 독특한 힘이자 아름다움이다. 견디기 힘든 아픔을 건강하고 당당하게 바꿀 줄 아는 삶의 자세에서 독자들은 새로운 용기와 희망을 얻게 될 것이다. 살아온 기적은 살아갈 기적이 될 것이기에.
1...
다시 시작하기 |‘미리’ 갚아요 | 루시 할머니 | 미술관 방문기 | 마음속의 도깨비 |사랑을 버린 죄 | 20년 늦은 편지 | ‘오늘’이라는 가능성 | 아름다운 빚
2...
와, 꽃 폭죽이 터졌네! | ‘늦음’에 관하여 | 못했지만 잘했어요 | 어머니의 노래 | 침묵과 말 | 돈이냐, 사랑이냐 | 파리의 휴일 | 무위의 재능 | 무릎 꿇은 나무 | 내가 살아 보니까
3...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 괜찮아 | 너만이 너다 | 뼈만 추리면 산다 | 진짜 슈퍼맨
결혼의 조건 | 민식이의 행복론 | 창가의 나무 | 나는 아름답다 | 재현아!
4...
네가 누리는 축복을 세어 보라 | ‘오보’ 장영희 | 오마니가 해야 할 일 | 너는 누구냐? | 새처럼 자유롭다 | 김점선 스타일 | ‘좋은’ 사람 | 스물과 쉰 | 속는 자와 속이는 자 | 나의 불가사리
에필로그 희망을 너무 크게 말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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