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선비들의 마음공부의 기본은 《심경》과 《근사록》이다. 상대적으로 《심경》은 이황을 종사로 하는 영남학파가 중시한 텍스트이고, 《근사록》은 이이를 종사로 하는 기호학파가 중시한 텍스트다.성리학의 기본 교과서인 《근사록》은 주희와 여조겸의 작품이다. 북송 사상가 주돈이, 정호, 정이, 장재의 저술 속에서 학문의 대체와 관련 있으며 일상생활에 절실한 글들을 뽑아 책으로 만든 것으로 1176년에 완성된다. 그리고 1248년에 주희의 재전 제자인 엽채에 의해 최초의 주해서 《근사록집해》가 완성된다.
주희와 여조겸은 《논어》 자장편의 "넓게 배우되 뜻을 독실하게 하고 절실하게 묻고 가까운 일에서 생각하면 인이 그 가운데 있다"의 근사를 제목으로 삼았다. 자하의 이 말을 주자는 이렇게 푼다.
"절실하게 묻는다는 것은 자기가 배우기는 하였지만 아직 깨닫지 못하는 일에 대하여 절실하게 묻는 것이다. 가까이 생각한다는 것은 자신이 미칠 수 있는 일에서 가까이 생각한다는 것이다. 만일 배우지 않은 것을 데면데면 묻고, 아득히 멀어 미칠 수 없는 일을 생각한다면 배움에 정밀하지 않고, 생각한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주자는 "사서가 육경의 사다리라면 《근사록》은 사서의 사다리"라고 평한 바 있다. 이처럼 《근사록》은 학문, 치지, 존양, 극기 등 개인의 수신에서부터 가족, 사회, 국가의 원리에 이르기까지 성리학의 기본 입장을 밝히고 있는 텍스트다. 《근사록》은 주자학이 창도한 우주적 인간론의 철학적 토대를 보여주고, 그 우주적 본성을 개인, 가족, 사회, 국가의 지평에서 발견하고 실현해나가는 통합적 구상을 담고 있다. 주자학은 사서 가운데 특히 《대학》을 중시한다. 그래서 《근사록》 14권도 《대학》 삼강령 팔조목의 순서에 따라 구성되어 있다. 권1부터 권 5까지는 격물, 치지, 성의, 정심, 수양에 해당하고, 권6부터 권10까지는 제가, 치국, 평천하에 해당한다. 팔조목은 삼강령 가운데 명명덕과 신민 두 계열로 나뉘는데, 격물·치지·성의·정심은 명명덕 계열에 속하고, 수신·제가·치국·평천하는 신민 계열에 속한다.
나머지 4권은 실제 실무를 위한 조언과 지침들을 담고 있다. 실제 교육의 현장 지침을 담은 교육의 방법 (권11), 실무를 방해하는 마음의 편견과 병폐를 지적한 잘못을 고치는 것과 사람 마음의 병통 (권12), 전통적 이단인 양주와 묵적보다 불교를 타깃으로 한 이단의 학문 (권13), 고대의 성왕부터 공맹을 거쳐 북송이학자들에 이르는 성현의 기상 (권14)이 그러하다.
주자학은 수양을 강조하는 성학이고, 성학의 최종 목적은 성인이 되는 것이다. 성인의 마음은 사사로운 마음이 없는 무사심이다. 성인의 경지는 흔히 천인합일, 여물동체, 생사일여, 살신성인 등으로 표현된다. 성인, 현인, 군자 등에 대한 설명은 인본주의심리학자 매슬로가 말하는 자아실현자들이다. 성리학은 개인의 의미를 사회 공동체와의 연관성 속에서 파악한다. 이른바 "성인은 천지와 그 덕을 합하고, 일월과 그 밝음을 합하며, 사시와 그 질서를 합하고, 귀신과 그 길흉을 합한다"는 것도 바로 이런 연관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성학의 방법은 존양이다. 존양이란 마음을 보존하는 존심과 본성을 기른다는 양성의 줄임말이다. 존심이란 경을 통해 마음을 붙들고 있는 것이다. 양성이란 함양이다. 마음이 몸의 주재라면, 경은 마음의 주재이다. 경은 하나를 주로 하고 마음이 다른 곳으로 달아나지 않는다는 주일무적이다. 경은 단순한 심리학적 주의나 인지적 마음의 단속과 집중을 의미하지 않는다. 함양은 함영으로 자신의 내면에 깃든 하늘의 뜻과 합치하고 주객일치하는 것이다.
《근사록》의 단점으로 우선 자연도덕주의의 한계를 지적할 수 있다. 주자학의 자연도덕주의는 노장적 자연주의와 유학적 도덕주의의 결합인데 무위자연을 도덕적 선으로 보고 유위작위를 악으로 배제하는 성질이 있다. 따라서 주자학은 무위와 유위, 자연과 인간, 마음 안과 마음 밖 사이의 갈등을 이미 내포하고 있다.
"주자학의 본체론은 무위무형의 이(理)를 유위유형의 기(氣)보다 중시하고 그 공부론은 미발(未發) 시의 거경함양을 이발(已發) 시의 궁리성찰보다 중시한다. 마찬가지로 주자학의 처세론 내지 실천론도 자신의 일을 높이 숭상하는 탈정치적 은둔을 인간세계로 나아가 왕후를 섬기는 정치적 실천보다 더 중시한다. 주자학은 다시 말해 처(處)를 출(出)보다 더 중시하고, 퇴(退)를 진(進)보다 더 중시한다."(187쪽)
이런 딜레마는 유가의 정치행위적 실천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유가의 실천적 문제는 의(義)와 이(利)의 이원론적 대립을 특색으로 한다. 보통 의와 이의 대립은 천리와 인욕, 무위와 유위, 공과 사의 구별로 설명되고, 이는 순임금(성인)과 도척(소인)의 차이를 설명하는 토대가 된다. 천리와 인욕은 서양철학의 이성과 욕망, 문명과 애욕의 개념과 유사하다. 또한 페미니즘의 시각으로 봤을 때, 송명이학의 시대적 한계로 가족중심주의, 가부장적인 권위질서, 남녀의 불평등 등 전근대적인 사유를 지적할 수 있다.
"인도(人道)의 차원에서 설명되던 부자관계가 송대 이학가들에 오면 천도(天道)와 천리(天理)의 차원에서 설명된다. 효를 천리의 내재화를 통한 실천의 행위로 설명하는 방식은 부모를 숭배의 대상으로 한 종교화와 다르지 않다. 부자관계를 천리로 이해하는 것과 인륜으로 이해하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114쪽)
근사록-덕성에 기반한 공동체, 그 유교적 구상 은 도(道), 공부, 가족, 사회, 국가라는 다섯 가지 현대적인 주제를 가지고, 근사록 의 세계에 접근한다. 전통적 어휘와 개념 속에 갇혀 있는 근사록 을 현대적으로 해석하고 소통시키는 작업을 통해 주자학 본래의 실천적 가치를 재조명하고자 하였다.
서문
제1장 도(道)
근사록 에 담긴 ‘학문’의 구상_한형조
제2장 공부
생명의 의미에 대한 자각과 실천_이창일
제3장 가족
가족의 주자학적 구상_이숙인
제4장 공동체
공동체주의 윤리를 통해 본 주자학의 근사록 _이동희
제5장 정치
무위와 유의, 자연과 인간 사이에서_최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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